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60년 지방선거 (문단 편집) == 상세 == [[4.19 혁명]] 이후 실시된 지방선거로 시도지사를 선출하도록 지방자치법이 개정되어 4가지의 선거가 치러졌다. 첫번째가 특별시·도의회의원선거, 그 다음이 시·읍·면의회의원선거, 시·읍·면의회의원선거, 특별시장·도지사 선거. 시읍면자치제([[일본]]의 [[시정촌]]처럼 [[시(행정구역)/대한민국|시]]·[[읍(행정구역)|읍]]·[[면(행정구역)|면]]이 행정을 맡고 [[군(행정구역)/대한민국|군]]은 명목상의 단위인 제도)가 그대로 쓰이던 마지막 선거이며 [[박정희]] 집권 이후 실질적인 지방자치제를 통일 이후로 유예하는 내용의 법률이나 헌법이 도입되면서 31년 간 지방선거가 봉인되게 된다.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한해, 유권자가 투표용지에 후보자의 이름을 직접 기입해야 하는 자서식 [[투표용지]]가 사용되었다.[* 현대에도 일본의 투표용지는 이런 방식이다.] 대한민국 사상 자서식 투표용지가 공직선거에서 사용된 예는 이 선거 말고는 없었다. 같은 1960년 지방선거에서도 도지사 선거와 나머지 3개의 선거는 기호식으로 투표했다. 이 선거는 '''38.8%'''라는 타 3가지 선거보다도 압도적으로 저조한 투표율을 보였는데,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0123000329103002&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60-12-30&officeId=00032&pageNo=3&printNo=4574&publishType=00010|당시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이런 낮은 투표율은 선거일 당일의 한파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물론 이렇게 낮은 투표율을 기록한데에는 선거가 따로따로 치러진 이유가 있기도 했고 신구파 갈등으로 기대를 걸었던 유권자 상당수가 후반기 선거에 불참을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선거결과는 대체로 민주당이 신민당에게 판정승을 거두었지만 동시에 광역의원 선거에서 과반수 확보에 실패하는 부진함을 보였고 또한 대다수의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을 무소속에게 내주면서 장면 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동시에 나타냈다는 평가였다. 아무튼 민주당이 신민당보다는 나은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에 선거에서 참패한 [[신민당(1960년)|신민당]]은 [[민주당(1955년)|민주당]]이 [[3.15 부정선거]]에 버금가는 행동을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0121700209101009&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0-12-17&officeId=00020&pageNo=1&printNo=11943&publishType=00010|당시 기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